불안 전염

profile_image
관리자
2022-10-11 06:21 122 0

본문

박신후(우송대학교 융합IT학부  교수)




“요즘은 세상이 살기가 좋아져서 너희들은 좋겠구나.”


어릴 적 할머니가 나에게 해주신 말씀이다. 할머니의 어려웠던 시절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 때보다 더 나은 세상에 살고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요즘 나의 자녀를 바라볼 때는 또 다른 생각이 섞여 나타난다.




“너는 좋겠다. 앞으로 많은 것을 이루어가며 살 수 있어서.”


“나는 그래도 이렇게 여기까지 왔는데.. 다가오는 세상은 더 치열해지고.. 앞으로 이세상을 어떻게 살아갈까?”




학교를 졸업하고 가정을 꾸리고 사회를 살아가면서 한 가지 알게 되는 것은 세상이 생각처럼 녹록하지 않다는 것이다. 자신있게 세상에 나섰지만 예기치 않은 많은 변수와 항상 불확실성 속에서 뭔가를 결정해야 하고, 또한 그 결과에 책임을 지다보면, 때로는 삶이 버거워 질때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부모가 되어 자녀를 바라보다 보면 자녀 또한 앞으로 살아갈 삶에서 이러한 인간이 가지는 피할 수 없는 상황들로 인해 언제든 그들의 삶이 위협받을 수도 있다는 불안이 떠나지 않는다.


게다가 부모는 책임을 떠 안는 역할에 들어서기 십상이다. 스스로 판단과 결정을 하기 힘든 자녀에게 부모의 선택은 절대적이며 이로 인해 부모가 안게 되는 책임감 또한 어마어마 하다. 어떤 것이 좋은 선택인지 결정하는 순간에도 의심하며, 잠을 설치며 선택하지만 자신있게 선택한 경우는 손으로 꼽기도 힘들다. 


특히 자신의 삶에 대한 가치와 양육 방식이 자녀의 세상살이에 맞지 않게 되어 자녀와 의견대립이 생기면 더욱 그러하다.




부모는 최선을 다해 매 순간 순간 버텨내며 고군분투한다. 그러나 자녀는 이러한 부모의 마음과는 늘 갖지는 않다. 이러한 차이는 부모에게 위기를 의식하게 한다. 보모는 삶의 경험을 통해 즉각적으로  자녀의 태도와 행동에 따른 결과를 추측하고 걱정과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이제 부모는 차근차근 세상 살이에 대해 자녀에게 설명하지만 한 번도 경험해본 적이 없는 자녀는 이를 이해하지 못한다. 조목조목 저항하는 요즘 자녀들의 저항에 부모의 불안이 겹쳐져 대화는 공격적이 되고 때로는 비관적이며 때로는 강압적으로 흘러간다.


걱정하는(실제는 불안한) 마음에 대한 공감을 요구하는 부모는 자신의 불안을 자녀에게 전염시켜서 결국은 자녀가 자신의 불안을 똑같이 느껴서 행동의 변화가 일어나길 기대한다. 그러나 그러한 선한 의도와는 달리 자녀는 더욱 저항하거나 위축되고 심지어는 공포에 물들어 간다.


 


“어른이 되는 무서워.”




윌프레드 비온은 대상관계이론에서 컨테이닝 개념을 이야기한다. 


아기에게는 정서적 경험이 수용된 알파요소와 미처 수용되지 못한 정서적 사건들의 감각적 조각들인 베타요소가 있다. 수용되지 못한 베타요소는 어머니의 직관적 능력(레버리)으로 베타요소를 담아내어(컨테이닝) 소화한 뒤 다시 아이에게 되돌려 준다. 이러한 어머니의 컨테이닝은 의식적 차원의 수용 보다는 무의식의 교류 작용으로 설명한다. 이를 통해  아이는 안전감을 가지며 정서적 교환의 경험을 통해 건강한 성장을 이룰 수 있다.


어머니의 컨테이너가 담아내기를 하지 못하면 자녀는  수용되지 못한 베타요소를 내재화(알파)하지 못하고 베타요소의 경험은 결국은 사라져버린다.




부모 이전에 한 사람의 존재로서 인간이 가지는 실존적 불안을 수용하고 불확실성을 감내하며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일어나는 선택과 결과(때로는 완전하거나 만족스럽지 않을지라도)를 기꺼이 받아들이게 되면 부모의 컨테이너는 넓어지고 자녀는 더욱 안점감을 가지게 된다. 이때 부모의 안정감 역시 자녀에게 전염된다.  변화의 시작점이다.




부모로서 역할이 중요하지만 변화의 시작을 위해  먼저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실존적 불안을 수용해나가는 담대함을 스스로  찾아나서야 한다.




성찰 질문:


- 나는 어떤 감정을 전염시키는가?


- 나는 자녀의 불편한 감정을 담아내는가? 또는 나의 감정을 자녀에게 덮어 씌우는가?

댓글목록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